2010년 3월 19일 금요일

아메리칸 히스토리 X

http://blog.naver.com/ajagrace/60000385407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AMERICAN HISTORY X ·감독: 토니 케이 (Tony Kaye) 각본으로 죽지 않는 사나이 (Slipstream ,1989)를 한 바 있고,      아메리칸 히스토리 X (American History X ,1998) 에서는 감독과 촬영을 맡았다. ·출연: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 에드워드 펄롱 (Edward Furlong), 에버리 브룩스             (Avery Brooks) ·줄거리: 소방관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그 이유를 미국으로 유입되어 온 이민    자들 탓으로 돌리게 된 데릭(에드워드노튼)은 자신 안에 가득한 증오심을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    가 됨으로써 그 분노를  표출한다. 데릭은 자신의 카오디오를 훔치던 흑인을 죽이고 감옥에 가게    된다. 스위니 교장의 도움으로 그간의 삶을 반성하고, 출감 후에는 달라진 삶을 그리는데만 그치    는 것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가 된 동생은 물론 자신 때문에 흐트러진 가족을    바로잡을 결심을 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데릭의 인종차별에 대한 시선을 회상과 현실을    오가며 그린다. 안타깝게도 새롭게 살 것이라고 각오를 한 날, 동생은 흑인학생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약 100여분간의 런닝 타임은 하루 동안의 일을 그리고 있다. ·감상: 하얀 하늘, 까만 바다로 시작되는 화면은 영화의 소재를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것인지    흑백의 대비로 영화의 문을 연다. 물론 흑백의 대비는 그런 역할뿐만 아니라 과거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동생의 시선에서 본 형의 모습이 나오게 되었을 때 보여지는 장면은 지금껏 본   영화 중 가장 잔인한 장면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그 장면을 꼽을 수 있을 만큼 잔인하다. 흑인 을 향해 보도 블럭을 턱으로 물라고 하고 자신은 위에서 흑인의 머리를 발로 내리치는 데 여기서 데릭이 얼마나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였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흑인은 이미 총으로 몇  발 맞은 상태였다.) 그렇게 흑인을 무자비하게 대한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경찰이 왔을 때  데릭의 표정이 위에 나타난 사진인데, 죄책감이나 동정심과는 거리가 먼 당당한 웃음만이 나타난다. 나는 할 일을 다 했소. 만족하오! 라고 말하는 듯한 저 표정. 소름끼치지만 저  표정으로도 그의 백인우월주의 수위가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에드워드 노튼이라는 배우를 머리 속에 각인 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장면이기도 했다. 이  배우가 나에게 하나의 메이커가 된 것은 이런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배역에 대한 흡수력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이 된 「아메리칸 히스토리 X」는 동생 대니엘(에드워드펄롱)이 형에 대해 쓰게 된 보고서의 제목이다. 형이 출감하고 나서 형이 과거 인종차별주의자로서 어땠는지를 회상하고, 형과의 대화를 통해 형이 달라질 수 있었던 배경과 과정을 알게 되고 자신의 생 각과 나아가서는 일출과 함께 새 삶을 살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쓴다. 데릭은 감옥에 막 들어가서 백인들의 집단에 속하게 된다. 같이 일하는 흑인 동료와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지내던 중, 백인이 흑인과 교류를 하는 것을 보고 용납할 수가 없어 화를 내고, 결국은 백인그룹에서 멀어지게 된다. 혼자가 되기를 작정했을 때, 작업장에서 같이 일하던 흑인 동료와 대화를 하게 되는데 데릭은 그러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리라.) 그 흑인이 가벼운 죄로 6년이나 수감해야 한다는 사실부터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백인, 흑인 집단 그 어느 곳에서 속하지 않은 채 사방의   위험 속에서 데릭은 수감생활을 별탈 없이 무사히 할 수 있었는데, 출감할 때 그 흑인동료의  공이 컸음을 알게 된다. 어디 그 뿐이었겠는가. 자신의 증오심을 이용해 인종차별주의 모임을   만들고 뒤에서 조종만 하는 갱단 지도자의 편협함도 알게 된다. 이러한 여러 계기로 인해     데릭은 새 삶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샤워할 때마다 보게 되는 나치를 상징하는 문양의 문신    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게 많은데 그 중 하나는 이러한 인    물의 내적 변화를 회상과 현실사이를 오가며 그렸다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보면 그러려니 하는 방법이겠지만 몰입을 하고 본다면 많은 일들이 결국 하루 동안의 일이라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형제의 심리변화는 개연성을 띠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의 내러티브는 증오심의 표출, 그로 인한 상처. 결국은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결코 장면을 앞서지 않는다. 예를 들어 데릭이 출옥한 후 동    생과 함께 자신의 방에 걸린 나치깃발 등을 내릴 때 음악은 묵묵히 그들의 심경과 함께 할   뿐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는 대니얼이 쓴 보고서의 결말 부분이다. "증오심은 없어져야 한다.  우린 적이 아닌 친구다. 적이 되어선 안된다. 뒤틀린 열정으로 인해서 사랑의 끈이 끊겨선  안된다. 기억이라는 신비한 감정은 다시금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선한 측면을 통해서 그렇게 될 것이다." 증오심은 없어져야 한다는 말에 개인적으로 크게 동요했던 기억이 난다. 아메리칸 히스토리 X. 도대체 왜 이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 것일까. 영화를 보는 제1요인  이 현실도피였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는 아이에 대한 퍼즐이 완성 될 무렵인 고3, 감당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자 그 퍼즐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퍼즐을 다시 맞추려는 생각은 물론, 인생의 큰 관문이였을 수능도 잊은 채 영화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문제에만  사로잡혀 있던 터라 영화에서 다룬 인종문제는 거대한 숲으로 다가왔다. 나무귀퉁이에 쪼그리고 있던 내게 다가온 커다란 숲은 인생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며, 소소한  일들에 얽매이지 말고, 세계 속의 한 사람으로서 고민해봐야 할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부디 이 영화가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여러 일들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는  시간을 갖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학기에 쓴 거 니까 좀 오래 된건데. 저장해 놔서 올린다. 이 공간은 아마도 이런 곳이 되겠지..아쒸! 일기장을 보고 써야 겠다. 열라 많은뎅. 암만 봐도 멋있는 사진이야..저 눈빛!   태그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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